참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한 편으론 해가 갈 수록 마음 한 켠의 불편함이 점점 커져 떠나질 않는다. 이 땅에서 크리스천으로 맘 편히 살아간다는 불편함에 대해, 김규항님의 예수전 한 부분을 인용한다.


출처: 김규항 블로그 (http://gyuhang.net/2876)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해석이나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 영성가, 비폭력주의자, 하느님의 아들 등등. 그런 모든 해석이나 의견을 존중하더라도 절대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지배 체제에 의해 사형당했다'는 사실이다. 예수와 관련한 모든 해석과 의견들은 예수가 '왜 사형당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라 말하는 사람들은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인 그가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수가 영성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영성가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영성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수가 비폭력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비폭력주의자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비폭력주의자'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서 예수의 모습에서 제 마음에 드는 한 부분만 똑 떼어 내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입네, 예수는 영성가입네, 예수는 평화주의자입네 하는 것은 예수를 욕보이는 일이다. 사형은 커녕 일 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이 안락하게 살아가면서 예수 흉내로 세상의 존경과 명예를 구가하는 건 예수를 팔아먹는 짓이다. 


예수를 제대로 좇고 있는지는 무엇보다 지배 체제와의 관계로 증명된다. 사회적 모순이 존재하는 한, 다들 세상이 좋아지고 달라졌다고 해도 어느 한 귀퉁이엔가 인간으로서 위엄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예수를 좇는 사람은 지배 체제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수가 살던 세상처럼 지배 체제와 불화했다고 해서 쉽게 죽임을 당하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지배 체제의 직간접적 탄압과 주류 사회에서의 배제,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에게서―심지어 같은 길을 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서조차―일어나는 오해와 곤경은 다르지 않다. 지배 체제와 불화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오해와 곤경에 처하지 않으면서, 이쪽에서도 칭찬받고 저쪽에서도 존경받으면서, 예수를 좇고 있다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예수전 254~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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